남동생하고 함께 쓰는 일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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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하고 함께 쓰는 일기장남동생하고 함께 쓰는 일기장
보통 일기장 하면 은밀하게 자신의 일과와 생각을 적으며 누구에게도 보이길 꺼려하는 것일 겁니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에는 방학 과제물이기도 하기에 선생님에게 보여야 하기에 안 좋은 일도 좋게 적고 하지 않은 것도 한 것처럼 쓰기도 하지만 과제물이 아닌 나만의 일기장의 경우 비밀스러운 것이 많기에 남에게 보이길 꺼려합니다.
그런데 요즘 저의 일기장은 저 하나의 것이 아니랍니다.
저에게 유일한 핏줄이나 마찬가지인 남동생과 함께 사용을 하거든요.
그러니 저도 마찬가지이지만 남동생도 사소한 것까지 모조리 숨김없이 쓰고 그리고 누나인 나의 일기를 읽어가면서 자신의 일기를 저의 일기장 맞은편에 페이지에 장식을 하게 합니다.
저의 일기장이 이렇게 남동생의 일기를 같이 쓰게 만든 것은 모조리 저의 탓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남동생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라며 제가 가진 죄의식을 조금이라도 줄이게 하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이 정말이자 고맙기도 하고 가련해 보이기도 하답니다.
사실 몇 년 전만 하여도 우리 집은 그 누구의 집보다 행복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작지만 알뜰하게 부모님이 함께 운영하던 미용실에는 손님이 북적거릴 정도로 손님이 많았답니다.아버지가 총각시절부터 미용 기술을 배워 시내의 유명한 헤어숍에서 다자이너로 일을 하였고 엄마는 막 자격증만 따고서 더 좋은 기술을 익히려고 들어간 미용실이 바로 아빠가 디자이너로 근무하던 헤어숍이었답니다.
디자이너였던 아빠는 엄마에게 기술을 가르쳐 준다는 명목으로 쉬는 날도 헤어숍으로 나오게 하여 기술을 가르쳐주면서 그만 섹스의 기술까지 전수를 하는 바람에 저를 임신을 시켜버렸고 그 일로 인하여 원장에게 모가지를 당하였고 그렇게 되자 아빠는 변두리에 방이 딸린 가게 하나를 얻어서는 엄마하고 동거를 하면서 미용 일을 하기 시작하였던 것이랍니다.
보통 동네 미용실하면 아주머니들이 원장으로 일하며 혼자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아빠가 미용실을 개업을 하자 남자 미용사라는 이름 하나만으로도 손님이 아빠 말에 따르면 거의 구름처럼 몰려들었고 그렇게 되자 임신을 한 상태의 무거운 몸으로 엄마도 아빠의 일을 돕지 않으면 안 될 지경에 이르고 말았는데 그로부터 아빠와 엄마는 함게 미용실에서 아빠는 원장이고 엄마는 부원장이란 직함으로 머리를 다듬었답니다.
엄마아빠는 부부금술도 남달랐던지 보통 우리 또래의 아이를 둔 엄마아빠의 경우 한 명 그리고 많아야 둘인 경이가 좀 드물 지경인데 우리 엄마아빠는 저와 남동생 둘을 낳았을 정도이니 부부금술의 정도를 짐작을 하시겠죠?
몰론 아빠나 엄마에게도 형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랍니다.
하지만 이상하게 엄마의 형제들이나 아빠의 형제들은 조금 어렵기만하면 엄마아빠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정작 갚기는 한 푼도 갚지 아니하고 빌려만 가다가는 더 이상 안 되겠다고 생각한 엄마아빠는 형제의 정을 끊기 시작하였고 그러자 마치 그렇게 하기를 바랐다는 듯이 엄마아빠의 형제들은 등을 돌렸고 지금도 코빼기도 보이질 아니하답니다.
엄마아빠들의 형제들과 인연을 끊자 엄마아빠의 주머니 사정을 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한 푼 모아두면 엄마아빠들이 마치 알기라도 한다는 듯이 찾아와 손을 내밀지 아니하니 돈이 모일 수밖에 도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돈이 모이자 가게가 따린 이층집을 샀고 일층 절반을 미용실로 꾸미고 나머지 절반은 다시 둘로 쪼개어 세를 놓고 이층에는 우리의 살림집이 되었습니다.
이층에는 방이 넷이라 큰방은 엄마아빠의 방으로 사용하였고 다음으로 큰방은 제의 방으로 쓰기로 하였고 크기가 같은 방 두 개는 두 남동생이 각기 따로 사용하라고 하였으나 둘째 남동생을 무척 따랐던 늦둥이가 형하고 함께 생활을 하겠다는 바람에 제가 두 동생들에게 큰방을 양보하고 작은 방을 하나 사용하기로 하였고 남는 방 하나는 자질구레한 잡동사니들을 넣어두는 창고로 사용키로 했답니다.
그리고 우리 집의 부는 점점 축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엄마아빠는 매 주 정기 휴일인 화요일에 여행을 다니기 시작하였습니다.
월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나서 바로 떠나는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엄마아빠의 여행에 특이한 것이 있다면 월요일 저녁에 출발을 하는 경우 엄마아빠 둘만의 오붓한(?) 여행이었지만 화요일 새벽에 출발을 할 경우 우리 삼 남매 중에 하나를 필히 데리고 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물론 두 혹은 셋 즉 일가족 전체가 함께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답니다.
학교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아침에 선생님이 학교로 출근을 하였을 때쯤 엄마아빠가 전화를 해 주기에 이튿날 등교를 하여도 체벌을 당하거나 사유서를 쓰지 않아도 되며 저의 경우 대학생이기에 결강 처리하면 그만이었답니다.
또 작년에만 하여도 고등학교 3학년으로 대입 시험을 앞에 둔 남동생이 여행에 따라 간다고 할라치면 일반 부모님이라면 진학준비를 할 것이지 여행은 무슨 말라비틀어진 여행이냐며 꾸짖기를 하겠지만 우리 엄마아빠의 경우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대학 좋은 것에 간다고 인생이 다 좋게 펴지는 것이 아니라면서 우리에게 너무 공부에 집착을 하지 말라고 하실 정도로 다른 부모님들과 달리 관대하였습니다.
그런 우리 집에 불행의 구름이 덮친 것도 바로 그 여행에서부터 시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올 봄 월요일 저녁에 출발을 하는 엄마아빠만의 여행에 느닷없이 늦둥이인 이제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간 남동생을 데리고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로 보면 저의 경우 대학 2학년이었고 밑의 남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이라 저와 터울도 적당하였지만 늦둥이의 경우 겨우 초등학교 5학년이라 남동생과 막내가 무려 7살이나 차이가 났거든요.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우리 엄마아빠의 애정 전선을 가름 해 볼 수 있는 사실이 아니겠어요.
늦은 밤 출발을 한다기에 이상하게 평소 갔으면 말리지 않았을 남동생이 엄마아빠에게 새벽에 출발하지 왜 서둘러 출발을 하려 드느냐며 말렸습니다.
하지만 이미 작정을 하였던지 동생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아빠는 늦둥이를 동반하고 여행을 출발하였습니다.
엄마아빠가 늦둥이를 동반하고 출발을 하자마자 남동생은 좌불안석을 하며 안절부절 하지 못 하고 마냔 서성였습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우리는 놀라운 전화를 받았습니다.
엄마아빠 그리고 우리의 늦둥이가 탄 아빠의 승용차를 음주 운전을 하던 대형 트럭이 중앙선을 침범하여 정면으로 추돌을 하였고 우리 엄마아빠 그리고 늦둥이는 그 자리에서 사망을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 그런 것이란 것을 그때서야 알았습니다.
남동생과 저는 아바의 친구 분과 엄마의 친구 분에게 연락을 하였고 그 분들의 도움으로 엄마아빠 그리고 늦둥이의 시신이 안치가 되어 있다는 병원으로 갔습니다.
병원 관계자와 경찰 관계자는 우리 남매가 보기에는 너무나 참혹한 모습이라며 보지 말기를 권유하였고 본인 여부를 확인하여야 한다며 아빠의 친구에게만 확인을 해 달라고 하였고 아바 친구가 엄마아빠의 시신을 보고 나와서 우리 엄마아빠 그리고 늦둥이가 맞는다고 확인을 하여주었습니다.
인편을 통하여 엄마아빠 형제들에게도 연락을 취하였지만 그 누구의 코빼기도 보이지 아니하였고 우리 남매만이 엄마아빠의 친구 분들 그리고 제 남자 친구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장례를 치를 수가 있었습니다.
남자 친구!
당시만 하여도 정겹게만 불러졌고 불렀던 이름이네요.
하지만 지금은 생각키도 싫은 사람이기도 하답니다.
그 남자 친구의 배신만(?) 아니었더라도 우리 남매가 지금처럼 되어 있지는 아니하였을 것이니까 말입니다.
그 남자 친구는 저보다 세 살이 많은 오빠였습니다.
어느 날 친구들하고 미팅을 나갔었죠.
그 오빠가 제 눈에 확 들지 뭐예요.
다른 친구의 파트너로 정하여졌지만 이상하게 그 오빠하고 상대가 된 친구가 저의 파트너를 마음에 들어 하였기에 우리는 순순히 파트너를 바꾸었고 그 오빠들도 그렇게 된 것에 만족을 하였기에 자연스럽게 체인지 파트너에 성공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게 재작년 즉 제가 대학에 입학을 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 오빠는 군대에 다녀와 복학을 한 복학생으로 여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좋았습니다.
그랬기에 저는 겨우 대학 일학년의 새내기이면서도 전 그 오빠를 미래의 남편이 될 사람이라는 전제하에 데이트를 하였고 오빠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하였답니다.
오빠나 저는 서로의 집을 수시로 드나들었고 오빠의 머리는 우리 엄마 이외에는 손도 대지 못 하게 하였습니다.
심지어 아빠가 내 사위 머리 내가 만져주고 싶다고 엄마에게 사정 아니 애원까지 하였지만 엄마는 사위 머리는 장모 목이라며 완간하게 거부하며 직접 다듬을 정도로 엄마는 오빠를 좋아하였습니다.
저 역시 오빠 집에서 환영을 받는 인물이었습니다.
제가 오빠 집에 가면 오빠 엄마아빠는 며느리 왔다면서 갖은 음식을 다 해 주었거든요.
그러는 사이 우리는 점점 사랑의 늪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인애야 한 번만 주라”오빠의 입에 발린 말이었습니다.
“싫어 오빠하고 결혼식 올리고 첫날밤에 줄게”저의 완강한 뜻이었고요.
“좋아 그럼 내가 다른 여자를 섹스 파트너로만 여기고 만나도 된다고만 해 줘”제 고집을 꺾게 한 오빠의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저로서는 어떤 말도 하지 못 하게 하는 말이기도 하였고요.
“그게 싫다면 나에게 주던지 싫니?”제 목을 조이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정 그러면 더러운 모텔이나 여관은 싫어”제 입이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암! 당연하지 우리 공주님 처녀를 더러운 곳에서 때게 할 수는 없잖아!”오빠가 자기 승리에 도취하여 한 말이었습니다.
“오빠 나 처음인 것 알지?”부모님이 부유하였기에 오빠는 대학생 신분이면서도 신용카드를 여러 장 가지고 있었습니다.
오빠의 아빠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그런 대기업의 임원으로서 연봉을 몇 억대 받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 분이 외동아들을 소홀하게 대하겠습니까.
“그래요 공주님”옷도 벗지 않은 상태에서 저를 침대 위로 넘어트리고 올라타며 말하더군요.
“싫어, 씻고 해”오빠의 가슴을 밀치며 말하자
“아니 인애의 진정한 향을 느끼며 하고 싶어”오빠 고집은 단호하였습니다.
“............”어쩔 방법이 없기에 오빠 목을 두 팔로 감고 오빠의 입술을 받아야 하였습니다.
저로서는 첫 남자였기에 아주 서툴렀지만 오빠는 군대 가기 전에 사귀던 여자하고 해 본 경험을 가진 터라 아주 능숙하게 리드하였습니다.
오빠는 저의 혀를 빨면서 아주 침착하게 저의 옷을 능숙하게 벗기더니 팬티 한 장만 남겼고 그리고 자가의 옷도 벗으며 저의 입안에 자신의 혀를 들이밀기에 빨아주자 서둘러 옷을 벗더군요.
“이제 서로 알몸이 되어 사랑을 해야지”오빠가 마지막 남은 제 팬티를 벗기며 말하자
“부끄러워”전 부끄러운 마음에서 한 손으로는 보지둔덕을 가렸고 나머지 손과 팔로는 젖가슴을 가렸고 눈도 감는다고 감았지만 저의 눈을 가슴츠레하게 뜨고는 오빠의 하늘을 찌를 것 만 같은 좆을 응시하며 몸을 떨어야 하였습니다.
“공주님 하지는 않았어도 하는 것의 동영상은 봤겠죠?”오빠가 저의 두 팔을 잡고 보지둔덕과 젖가슴에서 때면서 물었습니다.
“...........”부끄러움에 고개를 끄떡이기만 하였습니다.
“아~흑 오빠 더러워”말릴 틈도 없이 오빠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제 보지에 혀를 대었습니다.
“아니 인애 똥도 난 먹을 태세가 되어있어”오빠가 잠시 고개를 들고 말하더니 말을 마치자마자 손으로 제 보지둔덕을 벌리고 혀를 대도 빨기 시작하였습니다.
저에게 감격케 한 말이었습니다.
동시에 저에게 오빠의 좆을 잡게 만든 계기를 준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당겨 제 입에 넣고 빨게 만든 말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엔 약간의 지린내가 비위를 상하게 하였지만 자꾸 빨자 냄새도 나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오빠가 빨아주는 보지의 감촉이 그것을 잊게 만들었는지도 모를 일이었습니다.
그 기분은 제가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자위를 할 때의 그것과는 전혀 느낌부터 달랐습니다.
보지둔덕을 손바닥으로 문지를 것만으로도 자극적이었는데 혀로 그도 사랑하는 오빠가 빨아주니 그 기분은 말로 표현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느낌이 좋았습니다.
“먹겠니?”오빠가 고개를 들더니 물었습니다.
대답을 할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오로지 오빠의 입술이 보지에서 떨어졌다는 사실만으로도 허전하였거든요.
대답을 하지 않고 빨았습니다.
제 더러운 보지에서 나온 물을 싫다하지 않고 모조리 빨아 삼켜준 고마움에 보답을 하기 위하여서라도 전 오빠의 좆 물을 삼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웩! 꿀꺽! 꿀꺽!”처음엔 무척 비위가 상하였습니다.
쓰기도 하였고요.
하지만 전 오빠의 좆 물을 모조리 삼켰습니다.
“양치질하고 올게”오빠가 돌아눕자 놀라며 오빠의 가슴을 밀쳤습니다.
섹스를 하면서 분명하게 키스도 같이 할 것인데 삼키고 난 후에도 역겨운 냄새가 제 코도 진동을 할 정도로 나오는데 오빠가 오빠의 좆 물이지만 그런 역겨운 냄새가 계속 나는 저의 입술을 멀리 할 우려가 있다고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 그럼 하고 와”오빠가 일어나며 덜렁거리는 좆을 내려다보는가 싶더니 바로 소파에 가 앉으며 담배를 한 대 피워 무는 모습을 보고 욕실로 갔습니다.
“음~ 냄새 좋은데? 자 이제 해야지”양치질을 하고 오빠가 앉은 소파에 나란히 앉자 오빠가 제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는 웃으며 말하며 저의 손을 잡고 일으켰습니다.
“몰라. 싫어!”따리일어나자 오빠가 장난스럽게 제 부풀어 오른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가볍게 누르자 제가 눈을 흘기며 말하였습니다.
“살살해 진짜 처음이야”오빠가 좆을 잡고 제 보지구멍 입구에 끝을 대자 미간을 찌푸리며 말하였습니다.
“그래 에잇!”오빠가 아랫도리에 힘을 줬습니다.
“악! 아파 가만있어”오빠의 가슴을 밀쳤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완전한 오빠의 여자가 되었다는 기쁨의 눈물이었는지 아님 처녀막이 뚫린 아쉬움의 눈물인지 지금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 합니다.
하지만 전 그렇게 처녀를 상실하였고 또 그로부터 수시로 오빠가 원하기만 하면 저의 뜻과는 상관없이 오빠에게 스스럼없이 가랑이를 벌려주는 그런 여자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정말 우습더군요.
사고로 엄마아빠 그리고 늦둥이가 죽자 오빠 부모님들의 반응이 냉랭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거기다가 장례식장에 와서도 일가친척이라고는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 것을 알고는 더 그러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안 지나서 오빠가 저에게 노골적으로 말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이 저와 결별을 하라고 하더란 말을 말입니다.
동시에 점점 오빠도 멀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부모님들의 뜻을 거절하기 어려웠겠죠.
“오빠 흑흑흑”전 오빠와의 멀어짐이 정말이지 많이 힘이 들게 만들었습니다.
많게는 일주일에 세 번 이상도 오빠의 좆을 받아들이던 보지구멍이 그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입니다.
적어도 두 번 정도는 오빠의 좆을 받아들이던 보지구멍이 오빠와 할 때는 그 막을 느끼지 못 하다가 점점 멀어지자 보지구멍의 허전함이 저를 힘들게 만든 것입니다.
그날도 그랬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저와 남동생이 함께 쓰는 일기장의 남동생이 쓴 일기를 그대로 옮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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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오늘 동아리 모임에서 술을 마시고 늦게 집으로 왔습니다.
엄마아빠 그리고 항상 나를 따르던 동생 훈이가 달려와 반겨 줄 것만 같은 집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정작 집에 도착을 하니 집안의 공기는 냉랭하였습니다.
심지어 누나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
누나가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고 누나의 방문을 열고는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 얼어붙어 그 자리에서 누나의 모습을 볼 뿐이었습니다.
누나는 치마 안의 팬티를 발목에 걸치고는 손바닥으로 보지둔덕을 문지르고 있었고 그리고 눈에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난 그 눈물의 이유를 조금은 알고 있었습니다.
평소 자기 집처럼 드나들던 경식이 형의 발걸음이 뜸하여졌기 때문이란 것을 말입니다.
“앗! 민기야!”그때서야 누나가 나의 모습을 보고는 놀라며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누......누나”놀라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누나의 행동에 놀라기도 하였지만 더욱더 놀란 것은 누나의 자위를 보던 나의 좆도 텐트를 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부르긴 누나라고 불렀지만 이미 제 눈에 누나는 누나가 아닌 하나의 여자로 보였습니다.
저도 모르게 누나 옆에 앉았고 그리고 누나가 문지르던 누나 보지에 스스럼없이 손이 갔으며 누나의 손을 보지둔덕에서 때고 제 손바닥으로 누나의 보지둔덕을 문지르는 자신을 발견하였지만 저는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아니하며 누나의 보지둔덕을 문질렀고 그리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 하나를 보지구멍에 넣었으며 손쉽게 들어가자 하나 더 넣고는 펌프질을 하였습니다.
“아~흑 민기야”누나가 자지러지는 소리로 제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런 누나의 자지러지는 소리는 저의 손놀림을 더 빠르게 만들기에 충분한 자극제 역할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누나의 손이 텐트를 친 제 바지 중앙을 잡았습니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였습니다.
누나가 거친 호흡을 하면서 바지 지퍼를 내렸습니다.
누나의 따스한 손길을 좆을 통하여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 따스한 손길도 잠시였습니다.
그보다 더 뜨거운 느낌을 받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누나가 저의 좆을 입으로 물고 빨았습니다.
누나와 전 자연스럽게 69자세가 되었고 누나는 저의 좆을 정신없이 빨았고 저는 누나 보지구멍에 손가락을 쑤시고 펌프질을 하면서 혀로는 누나 보지둔덕으로 흘러나오는 음수를 날름거리며 빨아 대었습니다.
누나와 남동생 남동생과 누나사이가 파괴되고 육욕에 굶주린 한 쌍의 동물로 변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누나의 보지를 빨고 또 한 손의 손가락 두 개를 넣고 펌프질을 하면서도 다른 손 하나로는 바지를 힘들게 벗기고 있었습니다.
바지가 벗겨지자 누나는 잠시 입에서 좆을 때는가 싶더니 재빨리 팬티를 좆 밑으로 내렸고 그리고 바로 다시 빨기 시작하자 전 손을 뻗어 팬티를 내릴 만큼 내린 후 두 발을 이용하여 아랫도리는 알몸으로 만드는데 성공을 하였습니다.
종착역이 보이기 시작하기에 나오려고 한다고 하였지만 누나는 더 빨리 용두질을 쳤고 그리고 좆 물이 나오자 거침없이 빨아 삼켰습니다.
더 이상 안 나오자 재빨리 몸을 돌렸습니다.
바로 좆을 누나 보지구멍 깊숙이 박아버렸습니다.
남매사이인 누나 보지구멍에 남동생인 제 좆이 박혀버린 것입니다.
펌프질을 하며 누나 입술을 찾자 누나가 도리질을 쳤고 그리고 제 목을 팔로 감고는 제 입에 자신의 젖꼭지에 넣게 하기에 젖꼭지를 빠는 것으로 키스를 대신하여야 하였습니다.
느낌은 아주 좋았습니다.
생각보다 조금 헐렁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친누나이기에 그 정도는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 그렇게 헐렁하게 만든 주범인 경식이 형을 패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헐렁하게 만든 만큼 자신이 누나를 지켜야 할 것인데 요즘은 아예 발길도 오지 않는 다든 사실이 미웠습니다.
“누나 좋아?”펌프질을 하며 물었습니다.
“몰라 하기나 해”누나가 눈을 흘겼습니다.
누나도 나의 좆이 자신의 보지구멍에 박히게 것을 후회하지 않는 다는 사실을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그래 참 경식이 형하고는 헤어졌어?”힘차게 펌프질을 하며 물었습니다.
“몰라 그 오빠 이야긴 다시 하지 마”누나가 경식이 형하고 헤어졌다는 사실을 넌지시 알리는 부분이었습니다.
“알았어, 대신 나랑 자주 해도 되게 해 줄 거야?”펌프질을 열심히 하며 물었습니다.
“휴~이렇게 되었는데 어쩌겠니?”누나가 한숨을 쉬면서 말하였지만 싫은 표정은 아니었습니다.
또 싫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하나가 더 있었으니 누나가 나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젖가슴 위에 얹도록 해 준 것입니다.
그렇게 누나와 난 한 몸이 되었고 그리고 엄마아빠 그리고 늦둥이가 죽은 후 누나가 자기 방으로 쓴다면 옮긴 누나의 방에서 함께 기거하며 살기로 합의를 하였으며 누나는 자신의 일기장을 나에게 보여줌으로서 경식이 형에게 첫 순결을 주었음을 알게 하였고 그리고 자신의 일기장 한쪽에 나의 일기를 적게 하고 맞은편 페이지에 자신이 쓰겠다며 첫 섹스 후의 기념이라고 하면서 같이 쓰기로 한 일기의 첫 일기는 저에게 먼저 쓰라고 하기에 누나가 욕실로 간 틈을 이용하여 이렇게 적습니다.
이제 다 썼으니 누나를 부르고 또 불러서 누나도 일기를 쓰게 하고 저도 일단 간단한 샤워를 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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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남동생이 먼저 쓴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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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1일
이렇게 길게 쓸 동안 샤워를 하였냐고요?
답은 아니다.
남동생의 느낌을 적나라하게 알려고 일부러 욕실에서 오래 버틴 것이다.
그리고 동생이 일기를 다 썼다는 말을 하기에 나왔고 그리고 동생에게 욕실로 가게 하였다.
헤헤헤 동생이나 저나 일기를 쓰가 난 후 다시 할 것이 뻔 한 일인데 뭘 그리 길게 씻겠나.
그런 저의 일기를 쓰겠다.
동생 일기를 보니 일기 처음 쓴 것이 틀림이 없다.
자기 혼자 보는 일기에 왜 높임말을 쓴단 말인가.
바보다, 히히히
오늘 일찍 집으로 왔다.
학교 가기도 싫다.
학교에서 오빠를 만날 것이 두려운 것이다.
보고 싶고 또 오빠 품에 안기고 싶고 오빠 좆으로 내 보지구멍의 빈 공간도 틀어막고 싶은 마음은 꿀떡 갔다.
하지만 아무리 여자지만 나도 자존심은 있다.
만나기 싫어서 항상 다니던 길 마다하고 빙빙 둘러서 다닌다는 오빠에게 구걸을 하여가며 보지구멍의 빈 공간도 틀어막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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